일본 엔저 정책의 의도와 효과
일본 경제 안에서 엔저 정책이 불러온 진짜 효과들
처음에는 수출을 살리기 위한 정책으로 시작된 엔저가, 이제는 일본 경제 전반에 걸쳐서 예민하게 작용하는 변수로 커졌습니다. 환율이 단순히 외환시장의 숫자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지갑과 감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저는 일본을 여행하거나 뉴스로 접할 때마다, 일본 국민들이 체감하고 있는 경제 분위기가 생각보다 차갑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 속에는 엔저의 명암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관광 쪽은 확실히 혜택을 봤습니다. 엔화가 약하니 외국인 입장에선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고, 실제로 일본은 관광산업을 적극 육성해왔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일본인들 입장에선 해외여행이 부담스러워졌고, 심지어 해외 브랜드 제품 하나 사는 것도 예전보다 망설이게 된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그만큼 일본 내부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환율로 인해 제약을 받고 있다는 뜻이겠죠.
더 큰 문제는 기업들이 단기적인 수출 호조에만 의존하게 되는 구조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환율 덕분에 실적이 좋아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기술 개발이나 생산성 향상 같은 ‘본질적 경쟁력 강화’가 미뤄지는 현상도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엔저는 기업에 숨 쉴 공간을 주지만, 동시에 긴장을 늦추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한 겁니다. 특히 후발 경쟁국들이 기술력이나 생산 효율로 따라오는 상황에서는, 엔저만으로 일본 기업의 입지를 지키긴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환율에 기대는 경제정책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부작용’이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너무 쉽게 찍어서 그걸로 환율을 밀어내는 방식은 일시적인 '감기약'은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되진 않으니까요. 일본의 중앙은행이 여전히 초저금리와 완화정책을 고수하는 건 이해는 가지만, 세계적인 금리 인상 흐름 속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리고 이건 외부인의 입장에서 본 느낌이지만, 일본의 엔저 정책은 결국 국민의 희생 위에 쌓인 전략 같다는 인상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수출은 늘고 외국인은 웃고 있지만, 자국민들은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고,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현재를 버티는 데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책이란 결국 누구를 위하느냐의 문제인데, 엔저는 그 수혜 대상이 생각보다 좁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엔저는 선택일까, 어쩔 수 없는 결과일까
한 가지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건, 일본이 과연 ‘원해서’ 이렇게 엔저를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분명히 처음에는 의도된 정책이었겠지만, 지금쯤 되면 스스로도 되돌릴 수 없는 흐름에 놓여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엔화를 끌어올리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고, 그 말은 시장에 풀린 돈을 걷어들이고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간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초저금리를 유지해온 탓에, 그 구조를 바꾸는 게 오히려 더 큰 충격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 일본은 고령화 사회가 심각하죠. 사회 전체가 점점 정체되어 가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급격한 통화정책 변화는 고령자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본 정부 입장에선 쉽게 방향을 틀지 못하는 거겠죠. 어느 방향을 택해도 부작용은 피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지금이 최선’이라는 식의 선택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보면 일본의 엔저는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수십 년간의 경제와 인구 구조, 소비패턴까지 뒤엉킨 결과물처럼 느껴집니다. 한국도 일본을 보고 배울 점이 많지만, 동시에 조심해야 할 점도 많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엔저가 처음엔 수출을 살리는 훌륭한 전략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복잡한 사회적 비용과 구조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결국, 경제는 숫자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감정과 사람의 움직임이 있다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숫자는 좋아 보여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무거워진다면 그건 정말 성공한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엔저 정책을 보면서, 숫자 이면에 있는 사람들의 현실을 함께 보려는 노력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에 미치는 파장과 고민
일본의 엔저 정책은 단지 일본 경제 내부의 문제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게는 꽤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동일한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산업—자동차, 전자, 정밀기계 등—에서는 환율 차이로 인한 가격 경쟁력이 기업들의 수익성과 직결됩니다. 예를 들어 일본 기업 제품의 가격이 엔저 덕분에 상대적으로 더 저렴해지면, 품질이 비슷한 한국 제품은 자연스럽게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같은 돈 주고 살 거라면 더 저렴한 쪽을 고르는 건 당연하니까요. 그러다 보면 한국 기업도 어쩔 수 없이 가격을 낮추게 되고, 결국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투자 여력이나 임금, 고용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본의 엔저는 일본 혼자만의 선택이 아니라, 주변국들에게는 일종의 ‘환율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걱정스러운 건, 이런 흐름이 장기화되면 국가 간 무역 마찰이나 통화 경쟁 같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조용해 보일지 몰라도, 경제의 물밑에서는 복잡한 긴장과 계산들이 오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걸 보면, 한 나라의 통화정책이 가져오는 파급력은 생각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데, 우리는 그것을 너무 단순한 환율 숫자만 보고 판단해버리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일본의 엔저는 일본만의 선택이지만, 그 영향은 국경을 넘고 있으며, 지금도 조용히 많은 나라들의 경제전략을 다시 쓰게 만들고 있다고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