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증세, 모두를 위한 정의일까?
어느 나라든 경제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논란이 되는 주제 중 하나는 세금입니다. 특히나 경기침체나 국가재정 악화가 언급되는 시점이 되면, 늘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부자증세입니다. 말 그대로 고소득자 혹은 자산가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정책 방향인데요, 이게 말은 쉬워 보여도 실제로는 찬반이 극명하게 나뉘는 주제입니다.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게 무조건 공정한가, 아니면 그것이 또 다른 역차별인가. 이 문제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많이 버는 사람이 많이 내는 게 맞지”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그렇게 벌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모르면서 너무 쉽게 세금을 부과하려 든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의견이 갈리는 걸 보면, 참 단순히 수치나 수입의 많고 적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조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사실 저도 어릴 적엔 부자에게 세금 더 걷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 당연하지”라고 생각했어요. 뉴스에서 보던 억대 연봉자나 수십 채 건물 가진 사람들 이야기만 머릿속에 그려지니까요. 그런데 사회생활을 오래 하고 나서 보니, 세금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한 기준만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고소득자라고 해서 모두가 여유롭고, 세금 좀 더 낸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이 세금이 진짜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 의문이 풀리지 않으면,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공감을 얻기 어려운 거 같아요.
부자증세는 결국 단순한 조세 문제를 넘어선 ‘기여와 보상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한 사람이 많은 부를 축적했다면, 그만큼 사회 인프라나 시스템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에 비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죠. 반대로 보면, 세금을 더 많이 걷는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벌칙’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뜻이 됩니다. 아무리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 해도, 본인에게 그 세금이 공정한 기여로 느껴지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실질적으로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는다고 해서 그 돈이 곧바로 사회 전체의 복지로 이어진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요? 그 과정에서 행정비용은 얼마나 들고, 세금을 피하거나 우회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발생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부자증세가 공정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려면, 세금을 내는 사람도, 그 돈을 활용하는 정부도, 그리고 수혜를 받는 사람도 모두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임을 나눈다는 것의 의미
부자증세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 중 하나는 ‘형평성’입니다. 누구나 똑같은 비율로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더 많이 내는 게 더 공정하다는 생각이지요. 그건 이상적으로 보면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누진세 구조가 도입된 이유도 그런 취지에서 시작됐고요. 하지만 형평성이라는 개념이 ‘누가 더 많이 냈느냐’만을 기준으로 하면 결국 끝없는 비교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연봉이 억대지만,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하고, 주말도 없이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반면 누군가는 “나는 소득이 많지 않지만, 가족 돌보느라 시간을 쓸 여유가 없다”고 말하죠. 이럴 때 우리는 누가 더 많은 기여를 했는지, 누가 더 큰 책임을 질 수 있는지를 단순히 숫자로만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금을 통해 책임을 나눈다’는 게 단순히 돈의 양이 아니라, 공감의 크기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이라는 건 상대 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해보는 거잖아요. 내가 더 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조금 더 부담하되, 그 돈이 의미 있게 쓰인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요. 반대로 상대가 정말 힘든 상황이라면, 내가 낸 세금이 누군가의 하루를 살리는 데 쓰인다는 걸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회는 분명 ‘세금’이라는 단어가 덜 차갑고, 덜 날카롭게 다가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상은 그렇지만 현실은 참 복잡합니다. 사람마다 세금에 대한 경험도 다르고, 받는 서비스에 대한 체감도 다르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정책이든 신뢰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힘을 잃는다고 느껴요. 부자증세든 중산층 세율 조정이든 간에, 그 세금이 국민 삶을 개선하는 데에 쓰이고 있다는 걸 정부가 진심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마음도 생기고, ‘왜 나만 더 내야 해?’라는 반감도 조금은 누그러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면에서 보면, 부자증세가 정말 공정한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내가 더 내느냐, 덜 내느냐’의 문제를 넘어선 이야기입니다. 결국은 사회가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나누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 있어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설계되는 구조라면, 세금이라는 단어 자체도 지금보다는 더 따뜻하게 다가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